갑질이 없는 사회
갑질이란 갑을 관계에서 갑에게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이다. 즉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인격적 모독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기업 오너들이 슈퍼 갑질로 불명예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조용하다 싶으면 한 번씩 갑질이 언론이나 인터넷에 오르내리며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갑을관계는 형성된다. 갑질은 자신의 인격을 떠나 정서적으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비상식적인 행위이다. 더구나 사회지도층이 이런 행동을 하면 도미노현상처럼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같은 금수저라도 좋은 미담으로 자신을 알린 것과 달리 못난 사람들은 갑질로 자신을 알리고 있다. 갑질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태생부터 금수저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전혀 아니다. 무엇보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부를 일군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더욱 아니다. 혹독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부모 잘 만나 무임승차로 그 자리에 올랐으니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알겠는가. 더구나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아 어찌 춥고 배고픈 사람들의 심정을 알겠는가.
사회지도층의 일탈이 언론을 통해 알려질 때마다 공분이 하늘을 찌른다.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의 갑질이 많은 것은 돈만 있으면 사람을 물건처럼 부릴 수 있다는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는 금수저들이 자신은 뭔가 다르다는 우월감으로 선민사상에 빠져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보는 흙수저는 하나의 머슴에 지나지 않는다. 즉 한 사람을 인격체가 아닌 봉건적 주종관계로 보는 그릇된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이런 사람들의 성향은 힘 있는 사람에게는 비굴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갑질을 서슴없이 한다. 또 독선과 독단의 전형으로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안하무인으로 행동을 한다.
CEO는 회사의 문화적 품격을 만들고 미래의 핵심가치를 제시해주는 씨앗이다. 그런데 씨앗이 이 정도면 그 회사의 앞날은 어찌되겠는가. 안전을 책임지는 운전기사에게 이 정도의 갑질을 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상상을 초월한 행동을 했을 개연성이 높다. 무엇보다 부모가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기업문화가 한 사람의 무능으로 공유가치를 잃는다면 회사는 이미 죽은 것과 같다. 더 나아가 능력 없는 사람이 그릇에 맞지 않은 자리에 오르면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할뿐더러 사회를 오염시킨다.
인생을 살다보면 한 번쯤 실수 할 수 있다. 어찌 성인군자도 아닌 일개 범인(凡人)이 실수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 번도 아니고 자꾸 갑질을 자행하면 심각한 인격의 문제이다. 파급효과가 큰 경영자가 갑질을 한다면 개인의 문제를 떠나 기업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주주와 고객, 회사직원들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되어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는 소득불평등 국가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크다. 너무나 서글픈 현실이다.
현대사회는 무형의 자산가치가 소비자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준다. 갑질은 브랜드가치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한다. 한번 실추한 이미지는 다시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세상에 봉건주의 방식으로 부하직원을 대하려고 하면 절대로 안된다.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더 나아가 기업은 서서히 병들어 간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들이 참고 견딘 것은 사회적 약자로 처자식 먹여 살리면서 가정을 지켜야 하는 가장으로써 책임감 때문이다.
지도층부터 모범을 보여야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사회가 아닌 건강하고 향기로운 사회가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이다. 사회지도층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하면 국민들을 한데 모으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다. 성숙하지 못한 행동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고뇌해야 한다. 왜냐면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떤 삶을 사느냐가 훨씬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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