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용설의 모순성.
명리학은 천문과 계절과 음양오행 등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응용학문으로 볼 수 있다. 고대인들이 해와 달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해 농사를 짓는데 이용하기 위해 만든 역법에 그 모태가 있다.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고 달은 지구의 주위를 공전하는데 천체의 움직임으로 인해 춘하추동 사계절이 발생하고 사람 역시 자연의 변화와 태어난 날짜에 의해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다.
사주는 한 인간이 태어난 그 때에 해당하는 시간과 장소의 우주에너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각 글자의 간지마다 다양한 정보를 지니고 있다. 즉 생년, 월, 일, 시의 네 기둥은 유기체적인 시스템을 가진 구조물로서 우주가 만든 하나의 생명체인 운명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설계도를 제대로 해독하여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면 실용적인 학문으로서 진정한 가치가 있다.
명리학은 시간성과 역사성을 지닌 심오한 학문으로 우리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과 명리학은 필요에 의한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상호협조하면서 의존하는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통시적 연구와 더불어 해석의 방법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명리학 이론들이 과거 농경사회에서 정립된 이론으로 논리적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임상과 경험적으로는 별로 타당성이 없는 이론들이 많으며 지나치게 격용설에 치우친 나머지 해석의 오류로 인하여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사주해석에서 격용(格用)설이 갖는 문제점 중에 하나는 지나치게 운에 의한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용신 운만 오면 만사형통하고 운이 나쁘면 죽는다는 식의 극단적인 해석을 하여 찾아오는 문점자 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운의 흐름과 상관없이 누구나 타고난 기본적인 그릇이 있다. 그릇이 크면 비록 운이 나빠도 나름대로 체면유지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릇이 작으면 아무리 좋은 운이 와도 용량이 작아 담으면 넘치기 때문에 작은 성공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릇이다.
격용설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면서 용신의 개념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용신운만 오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용신보다는 격국 즉 자기의 그릇을 잘 관찰하고 분석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그러나 격국이 안정되어 있는 사주보다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얽히고 설켜 있는 파격이 훨씬 많다. 문점자 대부분의 사주는 책에 나오는 모범 답안처럼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갖가지 나물로 뒤섞여 있는 비빔밥과 같은 난해한 사주들이 많다.
이러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삶의 고단함에 지쳐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사주를 보러온다. 비빔밥처럼 탁한 사주는 격국 용신이 크게 의미가 없다. 단지 팔자 내에 뒤섞여 있는 요인이 어떻게 작용하고 미치며 그것으로 인하여 왜곡된 모양대로 분수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유도해 주면 된다.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 운명의 설계도를 인수 분해하여 논리적으로 분석해주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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