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당 다래헌/여유당과 만남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청화거사 2013. 12. 2. 12:02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사회적 용어로 표현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에 빠져 얽히고 설켜 있는 엉망진창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춥고 배고픈 민초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건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헌신해야 될 위정자들이 개인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국민의 기대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있다. 더 나아가 눈만 뜨면 싸움질이나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서로 간에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꼬일 대로 꼬여버린 갈등의 엉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슬기롭게 풀어가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통합적 리더십이다. 통합적 리더십은 자기와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은 물론 자꾸만 딴지를 거는 반대편도 포용하는 가슴이 따뜻한 리더십이다. 나의 행동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결코 아니다. 반대편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면서 합의점을 도출해 대립의 정치에서 상생의 정치로 승화시키는 리더십이다.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회현상들에 대해 큰 틀에서 바라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무언가 성과를 내려고 하면 시간에 쫓겨 실패를 하게 된다. 자연의 심오한 이치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변화하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은 깊고 높게 볼 수 있는 능력과 멀리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물을 좁고 얕게 보는 습관으로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이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실패를 하게 된다.

 

현재 밑도 끝도 없이 서로 간에 옳다고 싸우는 현상이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는 형국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지 1년이란 세월이 다가오지만 꽉 막힌 정국에 안으로는 경기침체로 민초들은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 바깥에서는 주위 강대국들의 패권주의가 위험한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서서히 그들의 전략에 휘말리게 될 수 있다.

 

지금 보수와 진보의 갈등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지는 못하고 무조건 나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이념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조화를 가져야 건강한 국가로 가는 초석이 된다. 최근에 종교인들이 구국을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시국선언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무슨 사심이 있어 단체행동을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로지 국가를 위한 충정으로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국정에 협조를 해야 되는 야당은 뒷짐을 지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명분 없는 싸움만 벌이고 있다. 여당은 겉으로는 국민들을 위하는 척 하면서 소신 없이 눈치만 살피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러한 작태가 과연 나라를 위하는 일인가 성찰해야 한다.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뿌리인 정치가 안정돼야 한다. 그 바탕위에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주면 경제는 자연히 살아난다. 더 나아가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사회문화는 꽃을 피우게 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로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갈등으로 불신이 팽배하여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지도자의 책임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에너지를 결집시켜 신뢰의 정치로 가면 성공한 지도자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된다. 지금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어 엄동설한에 죽지 못해 살아가는 힘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각성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단언컨대 그러지 않으면 머지않아 민초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따뜻한 가슴으로 포용하면서 군림보다는 섬김으로 솔선수범하는 통합적 리더십을 바라고 있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싸울 때 싸우고 협조할 때는 화끈하게 협조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자연의 이치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흥망성쇠는 반복된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라는 명언을 가슴속에 깊이 새겨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