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당 동양학/술수학

행위로 관상을 보다

청화거사 2013. 10. 8. 09:31

행위로 관상을 보다


관상과 관련된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을 관상술사와 연관하여 풀어낸 내용이다. 명(明)나라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이 후사를 정할 때 관상에 자손 복이 없는 넷째아들 태종(太宗) 대신에 자손 복이 많은 손자 혜제(惠帝)를 황태손(皇太孫)으로 삼는 바람에 숙부가 다시 조카의 제위(帝位)를 찬탈하는 역사적 사실이 영화의 내용과 흡사하다. 
 

언제부터인가 미신적인 요소로 치부되면서 우리 곁에서 멀어졌던 관상술이지만, 실은 오랫동안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일종의 경험 과학이다. 그러나 관상은 단순히 얼굴 생김새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럴 경우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 왜 그런지는 사기꾼의 상당수가 멀쩡하게 생긴 인상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사람의 행동을 가지고 관상을 보는 방법도 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면상(面相)은 배상(背相)만 못하고, 배상은 심상(心相)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심상도 미진한 바가 있다고 생각되므로, “심상은 행사상(行事相)만 못하다.”라고 하겠다. 면상의 길흉은 결국 행사로 드러나고, 배상의 길흉도 또한 행사로 드러나며, 심상의 길흉은 반드시 행사에 드러난다. 행사를 버려두고 사람의 상을 살피려고 하면, 이는 곧 마무리하지 못한 문기(文記)인 셈이다. 
 

전날의 행사는 이미 경험한 상이고, 지금의 행사는 바야흐로 시험하는 상이고, 장래의 행사는 경험하기를 기다리는 상이 된다. 이 세 가지 상 중에서 그 두 가지 상을 안다면 그 나머지 하나의 상은 사례에 비추어 추측할 수 있다. 앞의 일을 미루어 뒤의 일을 추측하는 데는 변통(變通)하는 방법이 있고, 이것을 들어서 저것을 밝히는 데는 손을 쓰는 방도가 있다. 
 

면상과 배상, 심상은 모두 행사의 상에서 참고하여 검증할 수 있다. 면상에는 근거를 댈 수 있는 단서가 있고, 배상에는 바로잡아 밝히는 단서가 있고, 심상에는 지향하는 실제가 있으니, 모두 쓸 만한 상이 된다. 행사에서 참고하여 검증하지 않는 것은, 비유하자면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방구석에서 세상사를 안배하는 것과 같다.

古人云。面相不如背相。背相不如心相耳。竊想心相尙有未盡。故曰心相不如行事之相。面相之吉凶。畢竟著行事。背相之吉凶。亦著於行事。心相吉凶。必著於行事。捨行事而欲相人。乃未磨勘之文記也。前日行事。乃已驗之相。在今行事。乃方試之相。將來行事。爲待驗之相。於此三相。知其二相。則其餘一相。可比例而測之。推前測後。有變通之術。擧此明彼。有容手之方。面相背相心相。皆參驗於行事之相。面相有引據之端。背相有訂明之緖。心相有指的之實。皆爲可用之相。若不參驗行事。譬如房闥之內人所不見處。排布世上事也。

- 최한기(崔漢綺, 1803~1877), 「행사상(行事相)」『인정(人政)』 권4, 「측인문(測人門)」

해설

관상, 즉 상을 살피는 방법은 다양하다. 얼굴의 구성을 살피는 면상(面相)이 있고, 뒷모습이나 골격을 살피는 배상(背相), 또는 골상(骨相), 마음을 살피는 심상(心相)이 있다. 그중에서 옛날부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심상(心相), 즉 마음의 상이었다. 얼굴이나, 골격 등도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길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관상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 선행을 베푼 뒤에 다시 보니 좋은 상으로 바뀌어 있더라는 이야기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전설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말이겠는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과학자인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는 이론에 따라 외면을 살피는 방법을 상법(相法)이라고 하고, 이론에다 관상가의 직관이 더해져서 내면을 살피는 방법을 상술(相術)이라고 하면서, 상술의 어려움에 대해 논하였다. 상법은 기존의 이론서를 통해 터득할 수 있지만, 상술은 고도의 신통력을 지녀야만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보았다. 그만큼 마음을 읽기가 어렵다는 것이리라. 
 

그는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보완적 방법으로 행사상(行事相)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모든 상(相)의 길흉은 그 사람의 행위로 드러나기 때문에, 들여다보기 어려운 심술을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실제 행사로 나타난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선진(先秦) 시기의 순자(荀子)가 설파했던 “형태를 살피는 것은 마음을 따져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을 따져보는 것은 그 처신하는 방법을 가려보는 것만 못하다. [相形不如論心 論心不如擇術]”는 말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면상, 배상, 심상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하겠지만, 행사상은 일반인도 특별히 배우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을 듯하다. 초(楚)나라 때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있었다. 임금 장왕(莊王)이 그를 찾아가 상법(相法)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신은 사람의 상을 잘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잘 관찰하고, 그 사람의 벗을 잘 관찰합니다.” 
 

 일상적으로 보이는 처신이나, 교유 관계를 통해 그 사람의 관상을 보았는데, 그것이 거의 들어맞더라는 것이다. 결국에는 인지상정(人之常情)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느냐의 여부가 그 사람의 선악과 길흉을 판단하는 주요 요소인 셈이다. 송(宋)나라 때 사람 채경(蔡京)이 아직 존귀하지 않았을 적에 해를 쳐다보면서도 눈을 깜빡이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가 귀한 신분이 될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간관으로 명성이 높았던 진관(陳瓘)은 다르게 보았다. 
 

“그의 정신(精神)이 이와 같으니, 훗날 반드시 귀한 신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타고난 자질을 뽐내서 감히 해에 대적하니, 이 사람이 훗날 권세를 잡으면 필시 사욕을 부려 임금도 무시하고 방자하게 굴 것이다.”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모진 심성을 지녔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믿지 않았으나, 과연 그의 말대로 채경은 훗날 권력을 잡고 사마광(司馬光) 등 구법당(舊法黨)을 몰아내고 전횡을 일삼아 ‘육적(六賊)’에 포함되는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불과 몇십 년 전, 어느 대기업의 총수가 신입사원 면접 때 관상을 보고 당락을 결정하던 일이 있었다. 현실적 이익에 밝은 기업인이 관상을 중시했던 것은 나름대로 상당한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일반인들이야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관상을 본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의 처신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글쓴이 : 권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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