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당 동양학/음양오행론

五行에 대한 고찰

청화거사 2013. 6. 7. 16:19

陰陽과 五行은 본래 각기 다른 유래의 성질을 가진 개념이다. 지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음양은 노자의 출생지인 남방 楚나라 문화권에서 유행했고 五行은 鄒衍이 거주했던 해안의 齊나라 문화권에서 주도적으로 연구되었다. 그리고 음양은 우주발생의 기원을 설명할 때 쓰는 개념이므로 그 성격이 추상적이라면 오행은 구체적인 물질을 지칭하므로 사실적인 성격을 가진다. 
 

 陰陽과 五行은 본래 서로 다른 근원을 가진 별개의 개념들이었는데, 鄒衍에 이르러 오행과 음양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史記』「曆書」에서 추연에 대하여 “오행의 轉移에 밝으며 陰陽消息의 법을 전파하여 제후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고 한 말에서 본다면, 추연이 이미 음양과 오행을 모두 사유의 범주 속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사에 의거해보면 아직 음양과 오행을 하나로 융합했다고는 할 수 없다 양자의 융합은 鄒衍의 후인들이 기록한 것으로 보는 『管子』「幼官」「四時」「五行」등의 편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사시」에서는 “음양에서 四時가 나온다”는 도식을 제시한 다음 다시 사시에다 오행을 배합시키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이는 음양과 오행이 상호 결합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戰國時代부터 五行은 陰陽과 함께 우주자연 및 인사를 해석하는 중심 개념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성은 고대로부터 있어왔던 五行 개념을 鄒衍이 체계화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오행 개념의 기원을 찾는 작업은 극히 난해하다. 劉蓧紅은 오행의 기원을 멀리 殷代까지 소급해서 본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고대의 문헌에서 五行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書經』의 「大禹謨」·「甘誓」·「洪範」등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형식상으로는 五行 개념이 가장 먼저 등장한 자료로는 「書經」을 들 수 있다. 「대우모」에서“덕은 오로지 정치를 잘 하는데서 이루어지며, 정치의 관건은 백성을 잘 기르는데 있습니다. 그러자면 水· 火· 木· 金· 土· 穀을 잘 다스리십시오. 라는 글이 있다. 여기에 보면 분명 五行 개념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대우모」는 陰陽五行說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전국시대 이후의 작품으로 본다. 
 

「감서」는 夏代부터 구전으로 전승되던 조상들의 유훈을 殷代에 재정리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여기에 “有扈氏는 五行을 업신여기고 三正을 문란하게 했다. 는 말이 있다. 그러나 梁啓超는 여기서의 五行은 水· 火· 木· 金· 土가 아니라 인간이 행해야 할 다섯 가지의 윤리를 말하는 것이라 한다. 더욱이 屈萬里는 「감서」는 전국시대의 인물인 鄒衍의 영향을 받아 秦 8년 이전 무렵에 지어졌다고 본다. 또한 謝松齡은 「감서」에서 五行과 三正이 병렬된 것은 漢代 때의 일이므로 이것은 漢의 학자들이 옛 문헌을 정리하는 과정 중에 끼어든 글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오행의 의미에 대해서는 「홍범」에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는 水를 적시고 내려감〔潤下〕이라 하고, 火를 타고 오름〔炎上〕이라 하고, 木을 굽고 폄〔曲直〕이라 하고, 金을 따르고 바뀜〔從革〕이라 하고, 土를 심고 거둠〔稼穡〕이라 한다. 이는 오행을 단순히 물질의 의미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작용을 하면서 움직이는 氣로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행 개념이 철학화되어 오행설로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다. 오행은 오행설의 전개에 중추적 개념이 되어 진한시대의 저작인


『呂氏春秋』『淮南子』『춘추繁露』『黃帝內經』『白虎通』 등을 지나면서 그 의미가 더욱 심화된다.
  오행개념의 기원은 天의 기원설, 五方說, 五材說, 六府三事說 등이 있다. 天의 기원설 『홍범』에서는 하늘이 우왕에게 홍범구주를 내리셨다. 그 첫번째 것을 오행이라고 한다고 하였고, 이에 근거하여 오행의 기원에 관한 신화들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모두 오행이 天에 의해 주어졌다는 견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견해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방설은 오행관념이 오방에 대한 殷민족의 숭배에서 기원하였다, 殷代의 胛骨文에서 “동방에 풍년이 들게 하옵시고, 서방에 풍년이 들게 하옵시고, 북방에 풍년이 들게 하옵시고, 남방에 풍년이 들에 하옵시고, 왕께서 곧으시니 중앙의 商에도 풍년이 들게 하옵서소.라는 글과 癸卯日인 오늘 비가 오는데 서쪽에서 올까? 동쪽에서 올까? 라는 글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이미 五方개념이 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방설에 이어서 西周末에서 春秋時代에 오재설과 육부삼사설이 제기되었다. 『춘추좌씨전』「문공」7년에는 수 화 금 목 토 곡을 六府라고 한다. 라는 晉나라 극결(郤缺)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國語』鄭語에 “선왕께서 흙 쇠 나무 물 불을 섞어서 온갖 물건을 만드셨다”였고, 『左傳』襄公 27년에 “하늘이 다섯 가지 재료를 내시어 백성들이 함께 사용하니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오행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곳은 『尙書』「甘誓篇」과 「洪範篇」이다. 甘誓篇에서 “유호씨는 오행을 업신여기고 三正을 태만히 하였다(有扈氏威侮五行)”. 라고 한 문장이 나온다. 그리고 홍범편에서는 “곤이 홍수를 막아 오행을 어지럽혔다(鯤凐洪水, 汨陳其五行)”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때의 오행은 五材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 
 

『홍범』은 『서경』의 한편이고 今文尙書에 속한다. 『홍범』의 내원은 모두 물과 관계가 있다. 그것은 『홍범』오행설이 水를 오행의 첫 번째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과 부합한다. 곤은 오행을 어지렵혔으며 홍범구주는 먼저 수를 첫 번째로 하는 오행의 순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는 『홍범』의 요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념은 전국시대에 유행하였다. 『노자』는 水가 道에 가깝다고 하였으며 『관자』는 水地에서도 성인이 세상을 다스릴 때에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고하지 않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요체는 물을 이해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尙書』「疎證」에 “물과 불은 백성들이 음식을 만드는데 쓰이고, 쇠와 나무는 백성들이 농사를 짓는데 쓰이며, 흙은 만물이 자라는 것이니, 이것이 사람에게 쓰임이 되는 것이다. 오행은 곧 오재이다. 라고 하였다. 『尙書』「홍범구주」에는 오행에 대해서 구체적인 기록이 나온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철학적 의미의 오행론의 기원이라고 보고 있다. 
 

오행이란 첫째는 수요, 둘째는 화요, 셋째는 목이요, 넷째는 금이요, 다섯째는 토이다. 수는 적시며 흘러내리고, 화는 타오르며, 목은 굽었다가 곧았다가 하며, 금은 변혁시키며, 토는 심고 가꾼다. 흘러내리면 짠맛을 만들고, 타오르면 쓴맛을 만들고, 굽었다가 곧았다가 하면 신맛을 만들고, 변혁시키면 매운맛을 만들고, 심고 가꾸면 단맛을 만든다. 
 

이 기록에 나타난 오행의 의미는 기존의 오재설의 범위를 넘어서 오늘날 오행론의 오행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행의 상생순서와 물상, 속성을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홍범』은 殷을 정벌한 周의 武王이 殷의 귀족인 箕子에게 치국의 도리를 물었을 때, 箕子가 바친 글이라고 한다. 따라서 오행은 은나라에서 연원하여 주나라로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홍범구주가 洛書를 본떠서 만든 것으로 인식되고 이 오행의 순서가 오행의 生數에 근거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오행의 수와 『易經』「繫辭傳」의 天數와 地數 및 하도 낙서가 결합됨으로써 철학적인 오행론의 체계를 확립하게 된다. 五行說의 발생단계는 명확하게 말할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春秋時代까지는 소급될 것 같다. 오행에 관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측되는 記載는 『尙書』의 『甘誓』이며, 그 다음이『洪範篇』에 있다. 五行에 一日水, 二日火, 三日木, 四日金, 五日土, 水는 여기에 潤下하고(흐르고, 적시고), 火는 이에 炎上하고, 木은 이에 曲直(구불거리거나 똑바로 되거나)하고, 金은 이에 從革(加工해서 모양이 바뀜)하고 土는 이에 稼穡(穀物을 거두어 收穫함)한다. 윤하는 짠맛을 내고, 염상은 쓴맛을 내고, 곡직은 신맛을 내고, 종혁은 매운맛을 내고, 가색은 단맛을 낸다. 
 

오행이라는 명사나 관념은 『춘추좌씨전』이나 『국어』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오행은 만물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기본적인 원소로서 인도 불교의 이른바 四大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오행관념의 운용은 주로 이 다섯 가지 원소의 상호연관, 즉 이른바 相生  相勝하는 상호연관을 통해서 정치와 사회, 인생 그리고 자연의 각 방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집중된다. 
 

『白虎通義』에서 五行은 오행상승의 이치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 많은 것은 적은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水는 火를 이긴다”는 것은 물이 많으면 불을 꺼뜨릴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정밀한 것은 견고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火는 金을 이긴다”는 것은 불이 금을 녹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강한 것은 유약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金은 木을 이긴다”는 것은 쇠로 만든 기구를 가지고 나무를 벨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뭉친 것은 흩어진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木은 土를 이긴다”는 것은 나무가 능히 흙을 뚫고 나올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실한 것은 허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土는 水를 이긴다”는 것은 흙이 물을 막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행상승의 관념은 후한시대에 이르기까지도 구체적 실물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五行을 분석해 보면 나무나 불과 같은 자연형질 자체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木 火 土 金 水의 실체에는 形과 質의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五行의 法則인 木 火 土 金 水는 단순히 물질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象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형이하와 형이상을 종합한 形과 質을 모두 대표하며 상징하는 부호인 것이다. 따라서 천지만물은 陰陽과 木 火 土 金 水 등 五行의 相生과 相剋으로 生滅한다는 것이 陰陽五行說이다. 
 

易에 있어서 오행설을 처음 적용한 사람은 京房이다. 경방역학은 오행설로 길흉을 해석하는 것이 특색이다. 오행설은 만사만물의 상호관계를 해석하는 원리로 채용하여 『주역』해석에 도입하였고, 인사의 길흉을 판단에 활용하였다. 경방은 『京氏易傳』에서 “음양이 운행하면 추위와 더위가 교대하고, 오행이 서로 용사하면 길흉이 교대한다. 신명의 덕을 통하여 만물의 정을 구분하는 것이다” 라고 하여 陰陽二氣가 오행의 변화를 일으키고, 이것으로 만물의 吉凶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역이란 있고 없음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길함이 있으면 흉함이 있고, 흉함이 있으면 길함이 있다. 길흉의 뜻이 생기는 것은 五行에서 시작하여 八卦에서 마쳐진다. 라고 하여 변화를 드러내는 것은 팔괘이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오행을 통해서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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