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당 동양학/음양오행론

음양오행설의 발생

청화거사 2013. 4. 7. 21:06

음양오행설의 발생 


음양에 대한 관념은 그 기원이 불확실하다. 중국 고대 원시사회에서 ‘+’ ‘-’를 의미할 때의 음양이란 문자 이전에 하나의 의사소통을 위한 부호였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음양 관념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주역 기원설이다. 『莊子』「천하편」 에서는 역은 음양을 말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 ‘--’ 에 이미 음양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성기 기원설이다. 이는 음양 관념이 생식기 숭배에서 기원한다는 설로서, 『老子』에 보이는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신비스러운 암컷이라고 한다. 신비스러운 암컷의 문을 천지의 근원이라고 한다”는 관점이 그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 생식기 숭배 혹은 모계사회의 모계중심 관념에서 나온 것으로서, 주역의 ‘음양대대’ 의 관점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자연발생설이다. 『說文解子』제11편 운부에서는 음(雲+今)은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으로 ‘운’자를 합하고 ‘금’자를 음으로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陰은 고문에서의 음(雲+今)의 생략된 글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음양 관념이 자연현상의 관찰에서 시작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예를 들면 산의 남쪽과 강의 북쪽은 양이고, 산의 북쪽과 강의 남쪽은 음인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음양의 개념이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春秋左氏傳』으로서, “하늘에는 6기가 있어 오미를 내려 보내나니, 음한 것은 여섯 가지 병을 낳는다. 6기는 陰 陽 風 雨 晦 明인데, 나뉘어 사시가 되고 질서가 정해져 오절이 되고 지나치면 재앙이 된다. 음이 과하면 한질이 되고, 양이 과하면 열질이 되고, 풍이 과하면 말질이 된다”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음과 양을 천의 六氣의 중의 하나로서 각각 들고 있는데, 이때의 음과 양은 나머지 네 요소를 포섭하는 개념으로 정리되고 있다. 한편, 음양의 만물 생성 작용은 남녀 양성의 생식 능력에 비유되기도 한다. 
 

陰陽五行說은 처음부터 陰陽五行說로서 確立되어 있던 것은 아니며, 음양설과 오행설은 각각 독자적으로 발생하여 발전한 것이다. 陰陽에 대해 살펴보면 그 記載는 오래되었고 『詩經』이나 『易經』本文에서 나오지만 거기서 쓰여지고 있는 것은 陰은 日陰이란 것이고 陽은 日向이란 것을 의미한다. 또한 日陰에서 발전해서 陰은 血窟(혈굴)까지도 뜻하였다. 『易經』에서는 陽을 日光의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陽과 陰字의 발생은 오래되었으나 음양론으로서의 사상적인 전개를 맞이한 것은 훨씬 後代의 일이다. 마찬가지로 오행설도 그 발생은 『書經』洪範에서 볼 수 있듯이 五材라고 해서 등장했다.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5個의 물질로서 木 火 土 金 水가 등장한 것이다. 이것도 당초에는 五材란 사고방식이었고 오행론이란 이론에 처음부터 전개되었던 것은 아니다. 
 

음양오행설의 대표적인 학자인 鄒衍은 『史記』의 「孟子荀卿列傳」에 의하면 齊國출신이고, 齊의 威王, 宜王時의 사람이라고 하고, 趙의 平原君이나 燕의 昭王등과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史記』의 平原君傳에는 趙의 평원군에게 厚待를 받고 있던 공손룡이 추연이 존경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錢穆의 『先秦諸子繁年』에서는 추연을 BC 305〜240년의 사람으로 추정하고 있다. 

 

『史記』에서 추연의 학문적 방법론을 살펴보면 명료한 역사적 사실에서 귀납법에 의해 법칙성을 찾아내고 그 법칙을 써서 연역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풀고, 또는 공간에까지 응용해서 나중에 大九州說을 펴내게 되었다. 大九州說이란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중국이란 전세계의 1/81밖에 안된다고 하는 설이다. 그의 업적은 대구주설 뿐만 아니라 후대 중국과 우리의 정치, 문화, 의학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음양오행설의 구체화와 五德終始說과 陰陽主運說로 대표하게 되었다. 
 

내용적으로 相勝(剋)설이다. 그것을 五德이라고 하는 것은 相勝의 王이 오행의 德을 규정하고, 德을 숭상하고 仁義의 정치를 펴야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당시 王公大夫는 모두 두렵게 이 설을 들었으나, 이것은 帝王 이외는 행할 수 없으므로 아무데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후에 始皇帝가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燕의 碣石宮에서 說을 바꾸고, 五德을 음양 및 방위에 결합하고 음양오행설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仁義節儉, 君臣上下, 六親之施의 실현을 期한 것이다. 
 

鄒衍은 陰陽이 서로 밀리고 당기며 진퇴하는 陰陽消息이 四時의 변화를 이루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鄒衍의 사상이 나타나는 『呂氏春秋』「十二紀」는 仲夏(5월)를 “是月也 日長至 陰陽爭 死生分” 仲冬(11월)을 “是月也 日短至 陰陽爭 諸生蕩“ 이라 하여 四時변화의 원리는 陰陽의 다툼(진퇴)으로 인식하였고, 음양의 消長과 相推는 계절의 변화와 晝夜長短의 변화를 일으켜 만물의 변화를 초래한다고 하였다. 鄒衍은 陰陽二氣의 消長을 무한하게 유추 확대하여 사회역사의 변화, 왕조의 교체까지 확대하였다. 
 

鄒衍의 음양론은 漢代 董仲舒가 종합하여 정리한다. 董仲舒는 戰國이래 陰陽五行 사상을 흡수하여 확대된 우주관을 펼쳤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연계와 인류사회의 질서 및 변화규율을 설명했다. 董仲舒의 철학체계에서 하늘은 최고의 범주였다. 하늘은 대개 정체된 우주이되 일체의 사물을 주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우주관은 하늘을 주로 삼는 것이고, 땅, 사람, 음양오행은 부분들이었다. 
 

그의 十端論은 바로 그러한 그의 우주관을 표상한 것이다. 그는 우주를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서 天과 地는 그 시작이며 음양과 오행은 유기적 구조를 매개하는 가교로서 하늘의 영향은 비로소 사람에 미쳐서 合一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다만 음양과 오행에 대해서는 음양의 소장변화는 사물의 발전을 결정짓고, 음양소장의 원인은 오행의 운행에 있다고 하여 음양과 오행의 상호관련성을 논하였다. 
 

鄒衍은 보통 음양가 혹은 음양오행가로 지목된다. 史記에서는 그가 陰陽의 소식을 깊이 관찰하였고, 음양의 운행으로 제후들에게 알려졌으며, 오덕종시의 운행에 대해서 논술하였다. 鄒衍이 陰陽과 五行에 대해서 언급하였다고 본 것이다. 그의 저작은 모두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그 사상의 본 면목을 상고할 길이 없다. 그렇지만 추연과 연관된 현존 문헌에서만 보자면 五德終始說에는 陰陽 관념이 없다. 그러므로 추연이 음양과 오행에 대해서 언급하였다고 하더라도 양자를 하나로 융합시켰다고는 볼 수 없다. 
 

周惇頤의 저서 『太極圖說』은 이학의 가장 중요한 경전 문헌 가운데 하나이다. 태극도는 원래 도교로부터 나왔다. 宋史 朱震傳에는 先天圖(복희 팔괘) 하도 낙서 및 태극도의 전승계통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에 의하면 이것들은 모두 華山의 도사 陳摶에게서 나온 것이다. 태극도의 구조로 볼 때 그 주요한 부분들은 주역참동계의 水火匡廓圖와 三五至精圖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태극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無極이면서 太極이다. 태극이 움직여서 陽을 낳고,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고요해진다. 고요해져서 陰을 낳고,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인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이 서로 그 근거가 된다. 陽으로 나누어지고 陰으로 나누어짐에 兩儀가 정립되었다. 陽이 변화하고 陰이 합하여 水 火 木 金 土를 낳는다. 五氣가 고르게 퍼져 四時가 운행된다. 五行은 하나의 陰陽이고, 陰陽은 하나의 太極이다. 太極은 無極에 근본한다. 오행이 생겨날 때에 각각 그 성품을 가진다. 무극의 眞體와 二五(음양오행)의 정수가 妙合하여 응결된다. 
 

乾道는 남성을 이루고, 坤道는 여성을 이룬다. 二氣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한다. 만물이 끊임없이 생성되어 변화가 무궁하다. 오직 사람이 오행의 빼어난기운을 얻어 가장 영묘한 존재가 되었다. 형체가 이미 생김에 정신에서 지혜가 나왔다. 五性이 감동하여 선악이 나누어지고, 만사가 그로부터 나온다. 성인은 그것을 中正, 仁義로써 정리하면서도 고요한 것을 위주로 하여 人極을 세웠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그 밝음을 합하며, 사시와 그 질서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한다. 군자는 그것을 닦아서 길하고, 소인은 그것을 거슬러서 흉하다. 그러므로 하늘의 도를 세워서 음과 양이라고 하고, 땅의 도를 세워서 강과 유라고 하고, 사람의 도를 세워서 인과 의라고 한다고 하였고, 또 처음을 더듬어서 마지막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안다고 한 것이다. 
 

태극도설을 살펴보면 그 속의 천인정신을 체찰할 수 있다. 그 중의 최고 범주는 무극-태극이며, 기본 범주는 陰陽, 五行, 天, 地, 人이다. 태극도설은 음양과 오행이 모두 태극에서 나왔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태극은 무극에서 근본한다. 
 

동양철학에서 陰陽論과 五行論은 매우 중요하며 동양철학을 陰陽五行論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白虎通』에 의하면 五行이란 木(나무) 火(불) 土(흙) 金(쇠) 水(물)를 말한다. 行이라는 글자는 하늘이 행하는 氣라고 하였다. 司馬遷이 지은 史記의 易書에 의하면 오행설은 黃帝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陰陽五行說에서는 우주와 인간사회의 모든 생성, 변화를 상반된 성격(실제로는 대대관계)을 가진 陰 陽과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木 火 土 金 水의 變轉으로 설명하는 학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오행의 相生 相剋 관계에 의해 사물의 상호관계 및 생성변화가 설명된다. 相剋이란 억제, 저지를 뜻하되 木剋土, 土剋水, 水剋火, 火剋金, 金剋木의 관계를 말하며, 相生이란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의 관계를 말한다. 이 陰陽說과 五行說은 전국시대 중엽까지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 통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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